Ⅰ. 서론: 인간 중심 접근의 시작, 현상학적 여정
인본주의 심리학의 거장인 칼 로저스(Carl Rogers)의 이론은 현상학적 성격이론으로 불립니다. 이는 인간의 행동을 과거의 문제나 외부 자극이 아닌, 개인이 ‘지금 여기에(here & now)’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현실, 즉 개인의 경험 세계(Phenomenal Field)를 통해 이해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로저스는 인간이 스스로 성장할 잠재력인 자기실현 경향성을 지닌 존재이며, 현재의 해석이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습니다.
건강한 성격 발달은 자기(self)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자기는 자기 여과 기능을 가지고 있어 지각에 영향을 미치고 체험과 기억을 여과합니다. 유아기나 아동기 초기에 타인으로부터의 ‘긍정적 관심’이 긍정적 자아를 형성하게 되며, 이 시기에 성격이 결정된다고 보았습니다.
Ⅱ 이론가의 생애와 이론의 태동
1. 칼 로저스의 생애
칼 랜섬 로저스(Carl Ransom Rogers)는 1902년 미국 일리노이주 오크파크에서 태어나 1987년 캘리포니아주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는 엄격하고 종교적인 기독교 신앙을 가진 중산층 가정에서 여섯 남매 중 넷째로 자랐습니다. 이러한 엄격한 종교적 배경은 그의 초기 윤리관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로저스는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농학, 역사/종교학을 거쳤고, 유니온 신학교를 잠시 다녔습니다. 이후 컬럼비아 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여 1991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2. 현상학적 이론 주창의 3가지 배경
로저스가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Phenomenology)에 초점을 맞춘 현상학적 이론을 주창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기존 심리학에 대한 반발
: 당시 주류였던 정신분석학은 인간을 과거 무의식에 의해 결정되는 수동적인 존재로, 행동주의는 환경에 반응하는 객체로 보았습니다. 로저스는 이러한 관점이 인간의 능동적인 가치와 내면을 무시한다고 비판했습니다.
2) 치료 현장에서의 통찰
: 로저스는 임상 경험을 통해 내담자들이 상담자의 지시나 해석 없이도 스스로 자신의 경험 세계를 탐색하며 문제 해결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관찰했고, 현재의 경험이 변화의 열쇠임을 확신했습니다.
3)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
: 신학 공부와 연결된 실존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인간은 자신의 삶에 대해 궁극적인 자유와 책임을 가지며, 주관적인 실재가 가장 중요하다는 관점을 자신의 치료 이론에 통합했습니다.
Ⅲ. 성장의 딜레마: 가치의 조건과 세 가지 핵심 태도
1. 가치의 조건(Conditions of Worth)
로저스는 긍정적 관심이 어떤 조건들을 충족시킬 때 주어지는 것을 가치의 조건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조건부적 관심은 아동에게 “나는 특정한 조건에서만 가치 있다”는 규범을 심어 자기가치(self-worth)를 조건화합니다. 이로 인해 자기 개념이 비현실적으로 되어, 타인에게 사랑받기 위해 자기를 희생해야 하는 모순에 처하게 되며, 경험과 자기 간의 부조화가 심해지면 ‘불안’이나 ‘혼란된 행동’이 나타납니다. 로저스는 현실이 너무 힘들면 합리화나 부정과 같은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현실을 왜곡해서 이겨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2. 훌륭한 삶을 위한 세 가지 핵심 태도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게 하는 것이 바로 무조건적인 긍정적 관심입니다. 로저스는 성공적인 인간관계와 치료를 위해 필수적인 세 가지 핵심 태도를 제시했습니다.

1) 무조건적인 긍정적 관심 (Unconditional Positive Regard)
상대방의 가치나 행동에 조건을 달지 않고, 그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이 태도를 취하면, 인간이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판단하며 유기체로서의 욕구와 자기 개념에 따라 행동하게 되어 최대한 성장하며, 건강한 자기 수용 능력을 키우게 된다고 합니다.
① 어린이 대상 예시: 아이가 위험한 행동을 했을 때, 혼을 내주기는 하되, 존재자체가 미워서 혼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말해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칼을 만지는 행동은 위험해서 안되지만, 너 자체는 여전히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야.”라고 말하여 행동과 존재를 분리해 수용하는 것입니다.
② 청소년 대상 예시: 자녀가 부모가 원하는 성과를 내지 못했더라도, “우리는 네가 가는 길을 조건 없이 지지하고 응원해.”라고 전달하여 조건 없는 사랑을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③ 성인 대상 예시: 배우자가 승진에 실패했을 때, “당신의 노력이 대단했고, 어떤 상황이든 나는 당신 편이야.”라고 지지하여 존재 가치 자체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2) 공감적 이해 (Empathic Understanding)
자신의 관점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내적 준거 틀에 들어가 ‘마치 그 사람인 것처럼’ 느끼고 이해하며, 그 감정적 의미를 정확하게 되돌려 주는 깊은 과정입니다. 이 태도를 취하면, 내담자가 자신의 실재로서 수용된다고 느끼며, 이로 인하여 자기와 체험 간의 일치(Congruence)를 증가시켜 스스로의 문제 해결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고 합니다.
① 어린이 대상 예시: 아이가 소풍을 가지 못해 울 때, “네가 기대했는데 못 가게 되어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이 속상하구나. 나라도 정말 실망했을 거야. 너무 실망해서 화도 나고 울었을거야”라며 그 슬픔의 크기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② 청소년 대상 예시: 친구가 외모 때문에 놀림을 받아 힘들어할 때, “네가 그 글을 봤을 때 얼마나 모욕감과 억울함을 느꼈을지 상상이 안 가. 나라도 정말 힘들고, 화났을 거야.”라며 감정의 핵심을 정확하게 읽어주는 것입니다.
③ 성인 대상 예시: 직장 동료가 업무 과부하로 번아웃을 겪을 때, “당신이 지금 감당해야 할 업무량이 너무 많아요. 아마 숨이 막힐 것 같을 거에요. 당장 모든 걸 내려놓고 쉬고 싶을 만큼.”이라며 그 심리적 무게감을 공감해 주는 것입니다.
3) 진실성/일치성 (Congruence / Genuineness)
상담자가 관계 속에서 순간순간 경험하는 내적 감정이나 태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외적으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즉, 인위적인 역할이나 연기를 하지 않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 태도를 취하면, 내담자의 자기 탐색을 촉진하고 상담자와의 관계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하며, 내담자 역시 자신의 현재 감정을 있는 그대로 자각하고 표현할 용기를 얻게 된다고 합니다.
① 어린이 대상 예시: 부모가 아이의 거짓말에 대해 “네가 거짓말을 했을 때 엄마는 크게 실망하고 마음이 아팠어. 하지만 나는 네가 다음엔 진실을 말할 용기가 있다는 걸 믿어.”라고 자신의 진정한 감정 상태를 공유하는 것입니다.
② 청소년 대상 예시: 교사가 학생의 행동에 실망했을 때, “너에게 기대가 컸는데, 지금 네 모습을 보니 선생님도 실망감이 느껴져.”라고 진솔하게 표현하여 학생의 자기 탐색을 촉진하는 것입니다.
③ 성인 대상 예시: 친구와의 갈등에서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네 말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어.”라고 자신의 내적 상태를 솔직히 공유하는 것입니다.
Ⅳ. 통찰의 결과: 완전하게 기능하는 사람의 5가지 특징
로저스는 자아실현 욕구를 충분히 키운 유기체적 평가 과정을 훌륭한 삶의 과정으로 보았으며, 이 과정에 있는 사람을 완전하게 기능하는 사람(Fully Functioning Person)이라고 칭했습니다. 실제로 로저스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이러한 통찰을 얻었습니다. 이러한 통찰로 얻은 결과로 로저스는, 훌륭한 삶의 과정이 가지는 공통된 특징을 5가지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1. 체험에 대해 개방적이다
1) 모든 내적 및 외적 자극이 방어기제 없이 자유롭게 전달되며,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고 느낀 대로 살 자유를 가집니다.
2) 사례: 헬렌 켈러(Helen Keller)는 시각과 청각을 잃었음에도 남아있는 감각적 체험에 완전히 개방되어 세상을 탐험했습니다. 마더 테레사(Mother Teresa)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체험에 깊이 개방하여 봉사를 실천했습니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는 극심한 육체적 고통과 내면의 복잡한 감정들을 회피하지 않고, 이를 작품 속에 있는 그대로(왜곡 없이) 표현하며 치유 과정을 거쳤습니다.
2. 매 순간 충실하게 산다 (실존적 삶)
1)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걱정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여기에’ 온전히 깨어 있어 존재의 매 순간을 충분히 만끽하는 실존적인 삶을 삽니다.
2) 사례: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는 아프리카 오지의 의료 봉사에 헌신하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전적으로 집중했습니다.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강제 수용소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현재 순간의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습니다. 달라이 라마(Dalai Lama)는 명상을 통해 ‘지금 여기’에 깨어 있는 실존적 태도를 일상에서 실천하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3. 자신을 신뢰한다
1) 사회적 요구사항이나 외부 기준보다 자기의 유기체적 체험을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삼아, 내면이 이끄는 대로 행동합니다.
2) 사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월든’에서 사회의 물질적 요구를 거부하고 자신의 내적 가치와 신념에 따라 단순한 삶을 살았습니다.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는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와 직관을 신뢰하고 미디어 분야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했습니다. 마리 퀴리(Marie Curie)는 당시 과학계의 편견에 맞서 자신의 연구 방식과 내적 확신을 신뢰하며 독자적인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4. 자유로움
1) 과거의 사건이나 환경에 의해 미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미래를 결정하는 주체로서 자유롭고 주도적인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2)사례: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는 27년간의 수감이라는 과거의 트라우마에 갇히지 않고 증오가 아닌 용서와 화합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주체적 자유를 보여주었습니다. 말랄라 유사프자이(Malala Yousafzai)는 탈레반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선택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주도적인 삶의 결정을 통해 자유를 실천했습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는 차별적인 제도와 폭력에 순응하지 않고, 평화적인 저항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스스로 선택하고 쟁취했습니다.
5. 창조성
1) 사회 문화적 구속에 수동적으로 적응하지 않고, 창의적이고 자발적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과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로저스는 “인간은 사회의 죄수가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2) 사례: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은 기존의 틀을 깨고 독창적인 현대 무용을 창시했습니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기술과 인문학을 결합하여 기존 산업의 틀을 깨는 혁신적인 제품을 창조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는 예술과 과학, 발명 등 여러 분야에서 기존의 경계를 허물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탐구한 창조적인 인간의 전형입니다.
Ⅴ. 결론: 진정한 나로 사는 삶의 역설과 현대의 도전
1. 칼 로저스의 통찰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그의 통찰은 우리에게 자신의 잠재력을 신뢰하고, 공감과 무조건적인 수용이라는 건강한 토대 위에서 진정한 자기를 실현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삶이라는 진리를 알려주었습니다. 특히 타인의 긍정적 관심에 대한 욕구가 너무 강하면 병리적 현상을 야기할 수 있기에, 무조건적인 긍정적 관심은 필수라고도 알려주었습니다.
| 칼 로저스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The curious paradox is that when I accept myself just as I am, then I can change.” (흥미로운 역설은, 내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내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
2. 현대 사회의 도전에 맞서는 개인의 의지
로저스의 세 가지 핵심 태도(무조건적 긍정적 관심, 공감적 이해, 진실성)는 이상적이지만, 경쟁과 자기 보호가 우선시되는 현대 사회의 현실 속에서는 실천이 어렵다는 도전이 존재합니다. 효율성과 성과가 중요시되는 환경에서 조건 없는 수용은 약점으로 보일 수 있으며, 진실성은 상처의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또한 타인의 고통을 깊이 공감하는 것은 심리적 에너지를 크게 소모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현실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로저스의 태도를 실천하려는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이 세 가지 태도는 단순한 관계 기술이 아니라, 스스로가 ‘완전하게 기능하는 사람’이 되어 ‘훌륭한 삶의 과정’을 살아가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토대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신을 보호하면서도 타인을 수용하려는 이 끊임없는 의지적 노력이야말로 현대인이 로저스의 가르침을 통해 얻어야 할 가장 중요한 통찰입니다. 자신에게도 무조건적인 긍정적 관심을 제공하고, 자기 내면의 경험에 진실하며, 현재의 삶에 충실하려는 개인의 의지가 로저스가 말한 성장의 유일한 열쇠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3. 여러분께 드리는 질문
1) 이 글을 통해서 여러분은 자신의 훌륭한 점을 얼마나 많이 발견하셨나요?
2) 이외에도 발견한 자신의 모습 중에서, 로저스의 ‘무조건적 긍정적 관심’을 적용하여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성장시키고 싶은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참고문헌 (References)]
1. Rogers, C. R. (1961). On Becoming a Person: A Therapist’s View of Psychotherapy. Houghton Mifflin.
한국어 번역본: 칼 로저스 (2009). 진정한 사람되기: 칼 로저스 상담의 원리와 실제. (주은선 역). 학지사.
2. Rogers, C. R. (1959). A theory of therapy, personality, and interpersonal relationships, as developed in the client-centered framework. In S. Koch (Ed.), Psychology: A study of a science. Vol. 3: Formulations of the person and the social context. McGraw-Hill.
3. 칼 로저스 (2000). 칼 로저스의 카운슬링의 이론과 실제. (한승호, 한성열 역). 학지사.
4. 권석만 (2012). 현대 심리치료와 상담이론: 마음의 치유와 성장으로 가는 길. 학지사.
5. 최동혁 (작가). 칼 로저스의 지혜를 통해 배우는 32가지 삶의 법칙.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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